'닭 모래주머니'가 정확한 명칭이겠지만 이렇게 부르면 괜히 정이 가지 않는다. '닭똥집'이라고 불러야 그 쫄깃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에 제대로 감도는 것 같다. '닭똥집'은 이름부터 참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음식이지만, 대구 사람들에게는 싼 값에 친구들과 둘러앉아 소주 한잔 기울일 수 있게 하는 친근한 음식이다.
그 중 대구에서 '닭똥집'하면 대명사처럼 함께 연상되는 '평화시장 닭똥집 골목'의 맛은 단연 압권이다. 원래는 평화시장 안에 속해있는 작은 골목길 중 하나였지만 유명세를 타면서 이제는 오히려 본래 시장의 역할보다는 '평화시장=닭똥집 골목'이란 인식될 정도다.
△이름만큼 부담없는 그곳
밤이 깊어지면서 닭똥집 골목 곳곳에는 고소하게 닭 튀기는 기름 냄새와 함께 왁자지껄한 소리가 퍼져나온다. 가게마다 사람들이 북적북적거리다 못해 좁은 골목길까지 전을 펴고 앉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 없이 커다란 파라솔 우산 아래 플라스틱 테이블을 꺼내놓고 옹기종기 둘러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생일파티를 하는 젊은 대학생들에서부터, 넥타이를 멘 채 회식을 하는 직장인들, 아저씨와 단 둘이 밤나들이를 나온 중년의 부부까지…. 닭똥집 골목은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사랑받는 곳이다.
지저분한 시장골목에 코를 자극하는 지저분한 음식냄새, 널려있는 생닭 등을 떠올릴 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가 보면 선입견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아무래도 주머니 사정 가벼운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탓에 시내 호프집 못지 않은 깔끔한 인테리어와 정돈된 골목 풍경에다 튀김기름의 고소한 냄새까지 입맛을 유혹하는 곳이다.
신암 육교 인근, 대로변에서 '평화시장 닭똥집 골목'이라는 간판이 붙은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면 닭똥집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이 곳에 닭똥집 골목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반. 시장 내에서 닭을 잡는 도계집 몇 곳이 이곳에 있었고 그 부산물로 요리를 하는 선술집이 문을 열었던 것이 그 기원이다. 그러던 것이 싸고 푸짐한 양에 반한 인근 경북대학교 학생들의 입소문을 타고 찾는 이의 발길이 늘어나면서, 몇 군데에 불과했던 가게들이 1990년대에는 무려 40여 곳까지 늘어나며 호황을 누리게 된다. 특히 1997년 IMF시절에는 싼 값에 삶의 애환을 달랠 수 있는 곳으로 각광 받으며 그 인기는 날로 높아갔다.
현재 이 곳의 가게수는 30여 곳. 매주 수요일 가게들의 절반이 1`3주, 2`4주로 번갈아가며 문을 닫기 때문에 시민들은 언제 어느때 찾아도 고소한 닭똥집 맛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메뉴가 '닭똥집'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닭'으로 만드는 모든 음식을 이 곳에서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정답이다. 닭튀김과 양념통닭, 찜닭에 닭발까지 없는 것이 없다.
한 때는 업체들의 무리한 경쟁으로 속칭 '삐끼'들의 호객행위가 극성맞은 곳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런 호객행위가 깨끗히 사라졌다. 박상근(똥집본부 대표) 상가번영회장은 "손님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호객행위는 오히려 상가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 2년 전부터 자체 정화운동을 벌여 현재는 삐끼를 찾아볼수 없는 골목이 됐다."고 설명했다
△온도조절이 관건
닭똥집은 다른 어떤 기관보다도 근육이 발달돼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하지만 요리를 잘못하면 이 쫄깃함은 딱딱함으로 변화하고 만다. 그래서 튀기는 온도조절이 가장 중요하다. 180~190℃에 달하는 고온에서 짧은 시간 내에 튀겨내야 똥집의 속살은 부드럽고 겉은 튀김가루는 바싹한 맛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골목에서는 흔히 치킨집들이 사용하는 자동 온도조절기를 사용하지 않는 집이 대부분이다.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노하우가 바로 맛의 비결인 것이다.
한 때는 닭의 내장으로 만든 '닭기름'이 이 곳 맛의 비결로 손꼽혔지만, 2년 전 불법 기름 파동으로 된서리를 맞고 난 이후에는 모든 가게들이 식용유로 기름을 바꿨다고 한다. 한 가게 주인은 "닭 자체에서 빠져나온 동물성 기름이기 때문에 사실 맛은 닭기름이 더 좋을 수밖에 없지만 불법 논란으로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있다."라며 "식용유를 이용해 제대로 된 맛을 내려면 더욱 온도조절에 신경 써 딱딱하게 살이 굳어지지 않게 신경쓰는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작은 것이 맛있다.
닭똥집 골목에서 사용되는 닭똥집은 대부분 칠성시장에서 가져오는 것들이다. 칠성시장에는 대구 뿐 아니라 경주·포항·마산 등 경상남`북도 전역에 닭똥집을 공급하는 집산처가 있다.
아무래도 닭의 내장기관을 사용하는 것이다보니 깨끗한 손질이 우선되야 한다. 그래서 칠성시장에서는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기름덩어리를 떼 내는 작업을 거쳐 평화시장 등지에 닭똥집을 공급한다.
평화시장에서는 장사가 잘 되는 가게는 하루 80㎏, 적게는 20, 30㎏의 닭똥집이 팔려나간다. 골목길 전체로 따지면 하루 평균 600, 700㎏의 닭똥집이 소비되는 셈이다. 닭 한 마리에 하나의 모래주머니가 나오는 셈이니 하룻밤에 수 천 마리의 닭이 목숨을 잃는 것과 같다.
칠성시장에서 도매로 가져온 닭똥집을 평화시장에서는 깨끗이 씻어 토막낸 후 튀겨낸다. 이 때 크기가 작은 것일수록 맛이 좋다고 한다.
박상근(똥집본부 대표) 씨는 "아무래도 영계가 맛이 좋은 것처럼 닭똥집도 마찬가지"라며 "가운데를 한번 잘라놓기만 하면 입에 들어갈 작은 크기가 맛이 좋고 서너번 칼질을 해야하는 큰 것은 쫄깃한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너희가 닭똥집을 알아?
기름기 가득할 것만 같은 닭똥집. 하지만 생각 외로 오히려 저지방 고단백 음식으로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인 음식이다. 열량은 154kcal(100g당) 수준. 단백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많이 먹지만 않는다면 몸에 무리가 없다고 한다.
'똥집'이란 이름이 부르기에 좀 민망스러운 감도 있지만 이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음식이다. 이가 없는 조류과 동물인 닭이 모이를 잘게 부수는 역할을 하는 '모래주머니'가 원재료. 사람으로 따지자면 위장 정도의 역할을 하는 내장기관이지만 노란색의 조금은 더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보니 '똥집'이라는 속칭이 붙은 것이다.
닭똥집은 우리나라에서만 먹는 특이한 음식은 아니다.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도 '치킨 기저드'(Chicken gizzard)라고 부르며 음식의 재료로 활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