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약령시는 1658년(효종 9)에 개장하여 수백 년간 국내는 물론 일본과 중국, 러시아 등 여러 나라에 한약재를 공급해 온 한약 물류유통의 거점이다. 오늘날까지 남성로 약전골목 일대에는 한약방·한의원·약업사·인삼사 등 350여 개의 한방 관련 업소가 밀집해 있고 약령시 전시관과 약재도매시장이 있어 옛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약령시축제는 지역의 명소 약전골목을 무대로 전통 약령시의 맥을 잇고 약령시의 명성을 되살리기 위해 약령시보존위원회 주최로 매년 10월 첫째주 금요일부터 약 10일간 열린다. 약령시보존위원회에서는 약령시축제 외에도 매년 5월에 약초꽃전시, 한의학고서전시, 야생화전시, 특별강연회 등을 내용으로 한 약초꽃한마당잔치를 열고 있다.
행사에는 약령제, 약령시개장, 한약재썰기경연대회, 초등학교농악경연대회, 한의사무료진료 및 투약, 팔공산한약초사진전, 우리약초채취대회, 야생초전시회, 한약재상설전시관운영, 경상감사 도임순력 행차, 약차무료시음회, 한방요리전시, 한약술전시 등이 있다.
약초의 향기 300여년…달구벌 '전통 1번지' - 아름다운 한옥 : 퓨전식 근대 건축물 볼거리
한방이 뜨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병만 고치는 게 아니라 몸의 기를 살려주니 지혜롭다. 신비로움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이 한방의 요체다. 거래 규모에서는 서울 경동시장에 못 미치지만 수입 당재(唐材)보다 우리 땅에서 나는 초재(草材)가 믿을 만하고, 한방다운 품격이 있는 동네라서 더 좋은 곳, 바로 대구시 약전골목이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는 동네다.
●東城로-西城로-北城로-南城로
대구의 옛 역사는 아주 흥미로운 모습으로 지금의 대구에 살아있다. '대구부성'의 성(城) 흔적을 따라 길들이 생겼고, 길 이름도 그에 따라 동서남북을 붙였다. 북성로와 서성로는 차 많은 큰길이 되었지만, 동성로는 유명한 패션거리로, 남성로는 대구 약령시를 담은 약전골목이 되었다. 성을 허문 자리에 그대로 길이 나는 경우는 우리 도시에서는 희귀하다. 대구는 평평한 달구벌 위의 도시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세기말(Fin de Siecle)에 성을 허물고 만든 그 유명한 비엔나의 링 스트라세(Ring Strasse) 거리를 연상시킨다.
대구, 전주, 원주의 3대 약령시로 불렸던 이 곳은 1658년에 시작되었다. 북문 근처의 객사(客舍) 앞 너른 마당에서 열리다가 일본 세력이 북문지역을 장악하고 성과 객사를 허물면서 남성로 동네로 옮겨와서 오늘날에 이른다.
●약전골목을 걸으며 성을 상상하다
달구벌대로와 중앙대로가 만나는 도심이라 목도 좋다. 700여 미터 길이의 약전골목은 바로 동성로와 연결되는데 2km를 올라가면 대구역과 만난다. 옛 성이 있었다는 것을 상상하며 걸으면 각별한 맛이다. 성이 있었다는 흔적은 그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고 살짝 힌트조차 주지 않아 아쉽지만.
동성로 패션거리는 전체가 보행전용길이 되어서 더욱 활발하게 되었고. 보수적인 대구에서 절대로 터주대감 자리를 안 놓친다는 대구백화점, 동아백화점도 있고 '밀라노'라는 이름이 붙은 쇼핑센터도 생겨서 젊고 화려하다.
약전골목으로 꺾으면 분위기는 바뀐다. 300여 한의원, 한약재상이 있어서 뿐 아니다. 시간의 깊이가 느껴지고 나지막한 건축물들의 이야기가 들리고 물론 약초 달이는 당귀, 천궁, 작약, 숙주향의 사물(四物) 향기도 난다.
●이야기는 많기도 하여라
쇼핑을 하는 입장에서는 한약방과 떡골목, 가구골목, 염매시장을 염두에 두겠지만, 약전골목 동네의 이야기 거리는 더욱 풍부하다. 빼어나게 아름다운 벽돌 건물인 계산성당과 제일교회도 있고, 제법 잘 살던 동네라 한옥들도 아름답다. 특히 '진골목'을 따라 있는 고래등같은 한옥들은 눈길을 끈다. 큰 길 외에 사이사이 작은 골목길 사이로 들어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북쪽의 '경상감영'으로 통하는 골목길로 아전들이 이 길로 등청했단다.
'옛날 동화'같은 집들도 많다. 특히 남문이 있던 자리에 있는 '대남한의원' 건물은 한식과 화식과 양식이 버무려져서, 그 아름다움과 기기묘묘한 공간감각이 놀랍기 짝이 없는 근대건축물이다. 화교동네도 있다. 구한말 청국 대사관이 있었고, 한약재 무역과 더불어 상당한 화교들이 살았었는데 1970년대 이후 없어졌다니 애석하지만, 약전골목의 숨은 가능성 중 하나다.
●시인 이상화와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
약전골목에는 문인 이야기도 많으니 뼈대있는 동네라 할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는 이 동네에서 네 집을 옮겨 다니며 살았고 '상화 고택'이 지금도 남아있다. 소설가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은 1950년대 이 동네의 생존을 위한 꿈틀거림을 그려냈다. 청마 유치환이 한약상 아버지를 따라 약전골목을 누볐던 체험을 시로 표현했는가 하면, 육사(陸史)는 독립운동용 무기를 '한약재 수입루트'를 통해 들어오려고까지 했다니, 이 동네의 이야기는 한도 끝도 없는 셈이다.
대구시는 약전골목 큰길을 가꾸는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사실 이 동네 전체가 대구의 보고가 아닐 수 없다. 지난 몇 년 대구에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전통동네 어디예요?" 묻게 되면서 대구는 이제야 대구 역사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에도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할까.
●한약 냄새에서 약초 향기로
약전골목의 한약 달이는 냄새는 서울 경동시장과 다르다. 순 식물성이라는 해설이다, 더 건강할까? 한방 음식, 한방 떡, 약초 차, 약초 키우기 취미까지 퍼뜨리고, '정력'이라면 아무거나 마다 않는 한국남자가 아니라 '자연 건강'을 찾는 세계인의 사랑을 듬뿍 받는 우리 동네가 되면 좋겠다.
약전골목 사람들은 한방 묘약의 전통을 이을 뿐 아니라 건축과 조원의 전통도 같이 이으면 더 말할 것 없이 좋다. 솔직히 한방전시관이나 새로 지은 건물들은 선인들 뵙기 민망할 정도이니 말이다.
아름다운 5월, 이 동네에서는 '약령시축제'가 열린다. 400가지 우리 약초가 등장하여 기기묘묘 약초의 영험함을 축복하라!